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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스피스 병동에서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6개월이
지났다. 2015년 8월 20일 목요일, 김종훈 씨는 다시
이곳을 찾았다. 그는 눈에 띄는 분홍색 조끼를 입고
있었다. 몇 달 전만 해도 어머니를 곁에서 돌보는 보호자
였지만, 지금은 환자를 돌보는 자원봉사자로 이곳에
와 있었다.
자원봉사 시간은 목요일 오전으로 잡혔다. 오늘이
그 첫날이었다. 이곳에서 주어진 일은 크게 세 가지다.
환자의 발과 다리를 만져드리고, 몸의 자세를 바꿔드리고, 병동에서 하는 여러 가지
요법 치료를 돕는다. 이날도 원예요법 시간에 보조를 했고, 선배 봉사자의 조언을
들으며 환자 곁에서 발마사지를 도왔다. 이것이 다는 아니다. 환자와 보호자 곁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을 지지하고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첫날
이라 여기저기서 보고 배우느라 바쁘다. 그래도 마음만은 편하다. 간호사 선생님들도,
자원봉사자들도 모두 안면이 있다. 병상에 누워 있는 어머니를 간병하는 보호자였을 때
누구보다 큰 힘이 되어주셨던 분들이다.
이제, 자신이 그 자리에 섰다. 발마사지를 받는 동안 곤히 주무시던 할머니가 자세를
바꿔드리자 눈을 뜬다. 두 봉사자의 손을 꼭 붙들고 눈빛으로 감사의 말을 전한다.
종훈 씨는 그 눈빛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안다. 입가에 절로 웃음이 번진다. 그는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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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병원에서 처음으로 가족 면담을 요청했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떨리는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다. 의사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암이 다른 곳으로 전이
되어 더는 치료가 어렵다고 했다. 시한부 선고였다. “앞으로 살 날이 6개월에서 1년이라고
했어요. 거짓말 같았죠. 영화나 드라마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 저에게 닥친 거니까요.
2005년의 어두운 기억이 다시 한 번 되살아났어요. 집에 혼자 있으면 불을 다 꺼놓고
쪼그려 앉아 울기도 했죠. 엄마 없이 내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너무
슬프고 괴로웠어요.” 종훈 씨는 당시 금융회사에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듣고 나서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어머니를 곁에서 돌보기로 결심했다.
암센터와 요양병원을 오가며 기약 없는 투병의 시간을 함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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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19일,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동에 입원했다. 어머니에게는 차마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암센터에 병실이 안 나서 잠시 이곳에 머무는 거라고 했다. 주변에서
들리는 말로 눈치를 챘을지도 모를 일이다. 호스피스 병동 생활은 편안했다. 집에서
식사를 하면 늘 구토를 하며 힘겨워했지만, 영양제를 맞으면서 기력을 차리셨다.
또 고통을 호소하면 밤낮 없이 간호사 선생님들이 달려와 통증 조절을 해주셨다. 자원봉사자 분들도 기억에 남는다. 어머니는 코끼리처럼 부은 발과 다리를 늘 주물러
달라고 하셨다. 오전, 오후 한 차례씩 발마사지를 해주는 자원봉사자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그분들의 선의와 호의가 눈빛으로 전해져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종훈 씨는 아무런 대가없이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위해 늘 베풀던 어머니를 곁에서 지켜보며
자랐다. 아들은 어머니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싶다는 바람을 강하게 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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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동안 의식을 잃고 누워 있던 어머니는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온 지 4주 만에 눈을
감았다. 2월 14일은 밸런타인데이였다. 종훈 씨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밸런타인데이였다.
숨이 멎고 심장이 멈추었다. 어머니의 하얗게 변한 입술을 보자 슬픔이 밀려왔다. 누구보다 삶의 의지가 강했던 분이었다.
수개월을 함께 지내며 내 손으로 씻기고 재운, 아기 같은 엄마의 몸에는 이제 온기가 없었다. 뽀뽀를 하고 볼도 비벼도 한번 가신 열기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영정사진에는
건강했던 시절의 엄마 얼굴이 담겨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종훈 씨는 어머니를 집 근처 가족공원의 납골당으로 모셨다. 평소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러 자주 들른 산자락에 있었다. 화장터의 불길을 눈앞에서 지켜보았지만, 지금도
어머니가 어디에 살아 있을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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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 병동을 떠올리면 촛불을 켠 듯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진다. 어머니를
끝까지 잘 돌봐주고, 보호자 입장을 많이 헤아려 주셨다.
한마디로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간병을 하느라 나도 모르게 지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간호사 선생님들과 자원봉사자들의 친절과 마음 씀씀이에 그 피로감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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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 병동에 있으면서 돌아가신 분들을 보았다. 지난주만 해도 혼자 화장실에
다녀오고 대화도 같이 나누던 분이 갑자기 병세가 나빠져 돌아가시면 그렇게 마음이
울적할 수가 없었다. ‘암’이라는 질병을 보는 시선도 바뀌었다. 어찌 보면 감사한 병이었다.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가족을 잃는 일은 없었다.
시한부의 시간은 서로에게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주어진 소중한 기회이기도 했다.
“엄마, 나 지금 잘 하고 있는 거지?” 이 질문에 답을 해줄 어머니는 이 세상에 없다. 하지만
종훈 씨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이 젊은이가 선택한 길은 ‘사랑’과 ‘애정’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어쩔 수 없는 이별을 겪지만, 그 이별의 끝에서 늘 새로운 만남이
시작된다. 그는 아직 젊고, 사랑할 시간은 많이 남아 있다. |
